마루 

                                곽정효

나뭇결 도드라지는 마루 위로
기우는 해
그림자 길어진 감나무가 올라오고
가랑잎들이 따라 올라와 바스락거린다
유난히 바스락거리는 건 슬픔이 오래 곰삭은 자리거나
벌레가 갉아 먹다 남은 빛바랜 사랑이다
지나간 바람이 돌아와 미진한 틈새를 기웃거린다
댓돌 위에 벗어놓은 신발이 줄어들면서
어느새 가랑잎보다 바삭해진 주인은
마루에 나와 앉아 있는 시간이 길어지고
일없이 일어서 여기저기 디뎌본다
몇십 년을 무겁게 지고 온 짐
내려놓으니
버석거리는 모래일 뿐인 것을
그래, 잎사귀 하나만 쥐여 줘도
물이고 불이고 휘젓는 게 인간이지
물오를 때는 제 몸이 그리는 그림만 보는 법이지
마루는 삐꺽삐꺽 잔기침 신음을 견딘다

―
1900년생인 나의 할머니는 칠십이 훨씬 넘어 양면괘지에 살아온 이야기를 늘 썼다. 언문 구어체를 세로로 썼다.

“내 인생은 모두 전쟁이었다. 한반도를 두고 벌인 러일전쟁과 세계 1차대전과 2차대전이 있었제. 하이고, 6·25는 피난가느라 고생을 마이 했다. 나는 친정에서 언문을 배웠다. 연필이 어데 있노. 아궁이 불 지피던 부지깽이로 감잎에 글자를 써봤다.”

잔기침 신음 같던 할머니의 지나온 세월이 생각났다. 이제 할머니의 시간들이 내게로 온다. 전쟁 이야기도 수없이 들었지만, 내가 태어나기 전 이야기이다. 옛날에 살던 집 마루에 앉아 늦가을 햇살 쪼이기를 추억한다.

가막살이꽃과 씨앗, 도깨비바늘

김순조 기자  dd99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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